오늘은 최근에 드라마(고려거란전쟁)로 인기를 많이 끌고 있는 양규 장군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특히, 제2차 고려-거란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데, 그 역사적인 사실도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양규의 생애
양규(楊規,?~ 1011년 3월 5일)는 고려시대의 문관이자 무장으로, 안타깝게도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그는 선왕 목종 시대에 관직 생활을 하면서 형부낭중(刑部郎中)이 되었다는 고려사 '양규 열전'에 기록된 것이 전부입니다.
양규의 전쟁 활약
양규는 제2차 고려-거란 전쟁 중에 도순검사(都巡檢使)로서 활약하였습니다. 고려거란전쟁의 첫 전쟁인 흥화진 전투에서 1주일간 거란의 40만 대군을 3천 명의 병사로 막아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 적군의 후방이 된 서
북면에서 유격전을 벌이며 수많은 포로를 구출하는 성과도 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러나 마지막 전투에서 고습도치와 같이 화살을 맞은 채로 전사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양규의 활약은 고려와 거란의 전쟁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수만 명의 포로를 구하는 성과와 전쟁을 반전시키는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결과 강동 6주도 잃지 않았을 분만 아니라, 3차 침공까지 고려가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양규의 후세 평가
양규는 그의 전공으로 공부상서(工部尙書)에 추증되었습니다. 그의 부인 은률군군(殷栗郡君) 홍씨(洪氏)에게는 교서와 함께 양곡 100석이 하사되었으며, 아들 양대춘(楊帶春)은 교서랑(校書郎)이 제수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으로 추증되었습니다.
*이는 개국공신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비록 당시 고려거란전쟁에서 주역을 펼쳤던 서희와 강감찬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양규의 헌신과 희생은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음을 기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남c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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